Ananya
615
2018-11-15 15:32:49
23
3099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기


현재의 프로젝트에 배정되어 일하기 전까지 저와 일했던 분 중 상사들은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게든 똑부든 똑똑한 구석이 많은 분들이었죠. 그래서 바쁘든 여유롭든 뭔가 배워가는구나, 혹은 적어도 '와 저 사람 앞에선 구라는 못 칠 듯' 하는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하는 프로젝트의 PM이 역대급 멍부입니다.

이 분의 특징을 대략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부하들 보고 되묻는 분입니다. "너는 왜 남의 말을 안 듣냐?" 제가 이 일화를 얘기해주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빵 터진 건 함정.


2. "나는 회사에서 공부하고 앉아있는 XX들이 싫어"

남들이 좀 새로운 기술을 배워 보려면 옆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어깃장 놓는데 정작 본인은 회사에서 주식 공부, 부동산 공부, 자기계발서 읽고 계심. 


3. 아카데믹 출신에 대한 이상한 적개심

제가 석사 출신입니다. 이 분이 석박 출신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정확히 3일만에 알았죠. 박사 졸업하고 와서 아직 인더스트리에 적응 못한 분들을 엄청 비하합니다. 예~전에 제가 입사한 지 2달이나 남짓 되었을까? 할 때 실수해서 혼났는데 혼내는 멘트에서 은근한 적개심을 맛봤습니다. "여기가 학교인 줄 아냐", "학교에서 배운 게 여기서 쓰일 줄 아냐", "아는 것도 쥐뿔 없는 교수 XX들 밑에서 뭘 배우겠냐" 그 때 느꼈죠. 아, 이 분은 뭔가 고학력자에 대한 뒤틀린 심사가 있는 분이라는 걸. 연구원이나 CTO 조직 출신들한테는 이상한 어깃장을 많이 놓습니다.


4. 반말

 나이 50 다 되어 가는 후배들한테도 반말, 고객사라 해도 대리 과장급이면 반말, 시종일관 반말입니다. 당연히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저한텐 뭐....


5.  "김대리 엑셀 팡션 쓰지 마세요.jpg"

저는 그 문자 캡쳐 보고 웃음이 안 나오더군요. 면전에서 머리 너무 굴려가면서 그런 복잡한 거 쓰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


6. 회식자리

회식자리에서 꼭 옆에 여자 직원 앉히고(모두가 싫어하다보니 자발적으로 옆에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 꼭 불러와서 ㅇㅇ이 옆에 앉히라고 요구함) 그럽니다. 성추행 성희롱 안 하는 건 그나마 다행인 듯. 2차 3차로 20대 직원(여자 포함) 데리고 단란한 가게에 간 적도... 가장 미투 열풍이 거셀 때 그렇게 가는 용기는 칭찬받을 만 합니다. 껄껄


7. 그거 줘봐

지시를 꼭 이렇게 합니다. "어이, 그거 줘봐." 그래서 제가 "그거..?라뇨?" 라고 하면 어제 한 그거 있잖아 왜~ 그것도 모르냐 이러면서 사람을 바보취급합니다. 알고 보니 카페 가서 커피 시킬때도"'그거 줘봐" 하고 알바가 "예?" 이러면 말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내더군요. 그리고 A를 달라고 해서 A를 드리면 나중에 B도 달라고 했잖아 하면서 짜증내시는데 우기는 데는 도리가 없습니다. 없는 데이터를 달라고 하시니...


8. 일찍 나오세요

말은 맞는 말인데 9시 반까지 출근하는 회사에서 대리가 9시에 나온다고 눈 부라리고, 자기는 7시 반에 출근하니까 보고 배우라고(...)



멍부는 처음부터 멍부였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분도 처음엔 똑부였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사람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리고 임원에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주변에 똑똑한 사람이 안 남습니다. 적당히 듣기 좋아하는 사람, 배신 안 할 거 같은 사람만 남겨 놓는 걸 선호합니다.

저희 PM이 왜 그런 사람이고 아직 안 잘렸을까요? 그 위에 임원들 중에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지 않나 합니다. 아랫것들은 빼고 서로 술 마시고 하하호호 하다가 산으로 가는 결론을 내고 그 '아랫것들'을 조지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고 그게 한 20년쯤 계속됐겠죠.

참 부지런한 분들입니다. 그게 조직을 망치는 게 문제지만....   

11
1
  • 댓글 23

  • 스즈
    28
    2018-11-15 15:39:59

    듣기만 해도 분노가 차오르네요

    0
  • hisuica
    3k
    2018-11-15 15:41:33

    역겹도르..

    0
  • mikiruku
    204
    2018-11-15 15:47:20

    멍부는 위로는 아부와 처세술이고.

    아래로는 무시당하지 않고 위에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 강압적이고 함부로 대하죠.

    문제는 인사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조직에 있습니다.

    처세술 없이 묵묵히 맡은바 임무에 충실한 사람보다

    능력없이 처세술에 목숨거는 사람들을 더 인정해준다면

    누가 그 조직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란 기대를 가질까요?

    위추 드립니다.

    2
  • 부르부르
    2k
    2018-11-15 15:47:45

    king of 꼰대...

    0
  • isNotEmpty
    2018-11-15 15:49:20

    '부지런함'과 '눈치'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죠.

    지식도, 깨달음도, 예의도 없이 살아온 분들이죠.

    0
  • 제운
    1k
    2018-11-15 15:53:38

    완전체시군요. 예시 2~3개 갖춘 진상들은 많이 봤는데 저렇게 모든걸 갖추신분을 들으니 참 골때리네요. 화이팅~!

    0
  • Ananya
    615
    2018-11-15 15:57:37

    그나마 저는 뒤끝이 없고 힘든 것도 술 한잔에 잘 잊는 스타일이어서 상대적으로는 잘 버텨오고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차/과장님들 중에서는 거의 자다가도 벌떡 깨고, 목소리만 들어도 울화통 치밀고, 이명이랑 소화불량이 생겼다는 분들까지 계시니.... 그리고 저는 막둥이라 그나마 덜 깨지니까요.

    저도 주변 선배로부터  '똑똑한 친구들은 다 나갔다. 너도 준비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라는 말을 들었네요.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인거죠...

    2
  • 개발자스멜
    362
    2018-11-15 16:17:25

    제가 그런 상황입니다. 다들 피하는 똥하고 같이 일하죠

    그래서 그만 둔다고 했는데 팀장 왈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좀처럼 쉽지가 않다" 라고 하시더군요

    결국엔 절이 싫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죠

    그럼 그 자리에 새 사람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되구요

    신기하게 이런 분들은 좀처럼 자기가 그만 둘려고 하질 않죠. 갈 곳이 없으니까요 ㅎㅎㅎ

    0
  • 아마그래머
    177
    2018-11-15 16:32:26

    아... 7번 극공감합니다.. 지금 겪고있는데 진짜 답답함

    0
  • Ananya
    615
    2018-11-15 16:41:34

    @아마그래머

    저도 다른 것은 다 참는데 7번에서 울컥합니다. 특히 아침 9시때부터 저러면 속에서 뭔가 올라오죠. 원래는 저도 욱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언제 터질까 겁이 나서 가급적 스트레스는 빨리 풀려고 하는 중이죠 ㅜ.ㅜ

    0
  • 승천하는_흑염룡
    1k
    2018-11-15 18:13:17

    멍부.... 많이본 단어 ㅋㅋ

    https://okky.kr/article/510579


    0
  • 메로메로
    278
    2018-11-15 18:18:30

    9. 당연한거 아니야?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법을 지켜야 한다를 제외하곤 상대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0
  • 똘멀아빠
    138
    2018-11-15 18:55:41

    보통 하는게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근태챙기는 겁니다.

    물론 아무 하는 일없이 사장 돈 빨아가는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대부분은 남들에게도 그걸 강요하더라구요.

    그런데 올려주신 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강약약강 셩향을 가지고 있어서 대놓고 한번 개기면 맞상대하다가 지가 다칠까봐 깨갱하더라구요.

    단, 조직에서 스타가 되는 부작용은 있습니다.

    0
  • K120매니아
    2k
    2018-11-15 22:44:05

    실력없고 내세울건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근태와 잔소리, 독불장군식 카리스마 꼰대정신으로 위에다 사바사바로 직장생활 연명하는거겠죠

    주로 건설이나 제조업 같은 보수적인 회사에서 많이 봤습니다

    0
  • jjsun9
    1k
    2018-11-16 09:43:55

    경력쌓고 이직하는게 답

    참고 참는게 본인한테도 이득

    0
  • mirheeoj
    8k
    2018-11-19 09:01:08

    보통 회사같으면 저런 사람 만나면 바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미래가 뻔하니까요 

    이런 글을 쓰셨다는 것은 회사 처우가 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0
  • Ananya
    615
    2018-11-19 11:04:50

    @mirheeoj

    뭐 저 분 하나 빼고는 다른 분들은 다 좋은 분들이고... 그래도 대기업이다보니 복지나 처우에서는 만족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옥희의 많은 분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괜찮은 처지죠.

    그래서 참고 다니고 있는데 얼마전에 다른 임원들 앞에서 실무진하고는 한 번도 상의조차 한 적 없는 태스크를 제안하면서 '쉬운 일이니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놓은 다음 저 포함 세 명을 쥐어짜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라고 2주전부터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그게 쉽다고 말하라고 시킨건지... 그러면서 일을 실무진에 맡겨 놓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자기가 생각한 방향이랑 조금만 달라도 막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가 시킨 대로만 하라고 하니 그게 문제죠. 잔뼈 굵은 고급 특급 개발자들이 소화불량 수면장애 온다고 할 정도로..

    0
  • mirheeoj
    8k
    2018-11-19 11:10:35

    역시 추측대로네요. 그런 상황에서는 뻔한 답 -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노려라 - 말고는 딱히 드리기가 어렵지요. 뾰족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쓰신 글도 사실 아닐 것 같고요. 

    0
  • Ananya
    615
    2018-11-19 13:46:56

    @mirheeoj

    네, 저도 무슨 해결책을 기대하고 쓴 글은 아니긴 합니다 ㅎㅎㅎ 하소연할 곳이 필요해서리... 내년에 대리 다는데 기회봐서 이직을 하려 합니다. 저 분이 폭언과 갈굼으로 퇴사하게 만든 사람만 7~8명인데도(신입사원이나 대리도 아니고 전부 과장, 차장급이었음) 아직도 안고 가는 회사인걸 보면 미래가 밝아보이진 않습니다. 

    0
  • 이대훈입니다
    88
    2018-11-22 11:54:36

    글만 읽어도 답답해 죽을거 같네요

    0
  • onimusha
    7k
    2018-11-22 13:08:23

    ...

    왜 제가 경험한 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다 저런 성격이였을까요?;;

    0
  • 전재형
    4k
    2018-11-22 14:24:20

    진짜 저런 인간이 있어요???


    제가 가서 폭탄 던지고 올까요??!!

    0
  •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